글쓰기 욕망 독서의 문을 열다
왜 책을 읽는가? 내게 독서란 걷는 일과 같다. 심지어 나는 걸으면서 책을 읽기도 했다. 그 덕분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참 많았다.
언젠가 책에 정신이 팔린 채 걸어가다가 주차권 발행기에 부딪힌 일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어이쿠,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하고 고개를 들어 보았더니, 저런···주차권 발행기가 아닌가!
걷거나 읽는 일은 자발적인 행위다. 이는 '정당 함'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자발적이라는 이유로 성찰을 마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독서는 '자발적인' 행위, 사실 처음에는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독서는 걷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위는 아니다.
왜냐하면 독서는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서 습득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책을 읽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책 읽는 법을 쉽게 배우는 것도 아니다. 독서 습관에 대해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재미있을 것이다
나는 늘 권위가 싫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상대방의 반박을 잠재우기 위해 권위에 기대어 내뱉는 말처럼 화가 나는 일도 없다.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논리적인 말, 놀랍도록 멋진 이성적 대화를 거부하는데, 내겐 이성적인 대화처럼 멋진 것도 없었다. 이성적인 대화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반면 권위의식에서 나온 말은 그 기저에 상대방을 무시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권위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는 흡사 마법에 걸린 양 글쓰기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나타났다.
거친 야생아에 불과했던 내게 문장은 무언가를 열 수 있는 열쇠처럼 느껴졌다. 더구나 문장 속의 글씨들은 그 자체가 마치 열쇠 모양 같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단어들을 표현한 검고 길쭉한 열쇠 모양의 글씨들.
그야말로 우리 집 서가에 가득 찬 이 열쇠 꾸러미들은 내게 보물 창고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글쓰기는 내게 추상적인 존재인 것은 물 론, 어떤 목적이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즉 이해관계를 떠난 것이었다.
우리는 지식을 얻기 위해 역사 회고록이나 정치 프로그램, 천문학 관련 논문, 게임 설명서 등을 읽기도 하지만 사실 지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지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교양이 없거나 어리석기 그지없는 수많은 이들조차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지식을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유추능력'이다.
문학 중에서도 특히 픽션은 유추의 형태를 떤다. 즉 유추를 통해 자신이 이해한 바를 풀어낸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성을 넘어 감성에 반응하는 유추를 통해 사물을 이해한 것이 바로 문학이다. 유추와 감성, 이는 사물을 이해하는 또 다른 형태이며, 분석과 지성에 기대는 철학이 문학과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감성은 문학을 매혹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나, 또한 문학을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기도 하다. 감성은 그 자체의 이미지로 우리를 기만할 수 있으며, 철학이나 심리학보다 더 빨리 이러저러한 사물들을 파악하게 만들 수도 있다.
책을 통한 사물의 이해, 책을 통한···. 나는 '책을 통한'이라는 표현에 담긴 다소 경멸적인 의미를 인정할 수 없다. 이 표현은 아직 야만성을 벗지 못한 사회가 소위 문명이라고는 하나 겨우 식탁 예절에 불과한 세련된 탈을 뒤집어 쓴 주제에 정신적인 것에 집착한다는 경멸적인 뜻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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